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8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여담 == * 이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서 헌정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을 몇가지 얻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최초로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과반을 득표한 대통령[* 양자대결이었기에 가능한 수치였는데, 당시 문재인 후보는 48%를 득표했다. 다만 안철수 후보가 중도 사퇴하지 않았다면 이런 수치가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2022년 이전까지 역대 최다 득표수를 얻은 대통령[* 이전 기록은 2002년 대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얻은 12,014,277표였다. 370만 표 이상 차이가 나서 기록이 깨졌다. 그리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16,394,815표를 득표하여 당선되면서 이 기록을 다시 갱신했고, 2위로 낙선한 이재명 후보도 16,147,738표를 득표하면서 박근혜의 득표수를 넘어섰다.], 최초의 [[박정희|부녀]] 대통령, 최초의 [[미혼]] 대통령[* 여성 대통령의 남편을 주로 부군(夫君)이라 칭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18대 대통령 임기 동안 부군은 공석이었다. --하지만 [[최순실|부군보다 더한 존재]]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8월 15일]]) 이후 태어난 첫 대통령[* 참고로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태어난 첫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1946년 9월 1일 생)이다.], 최초의 [[이공계]] 학과 출신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 학사, 하버드 사학 석사, 프린스턴 정치학 박사였으며, [[윤보선]] [[전 대통령]]은 에든버러 대학교 고고학 학사, 석사,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육군사관학교 학사, [[최규하]] [[전 대통령]]은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 졸업,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학사,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각 목포공립상업학교와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박근혜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출신이다. 여기에 후임인 문재인 대통령은 경희대학교 법학과 학사로, 박근혜는 아직까진 '''유일한''' 이공계 학과 출신 대통령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다만 출신과 별개로 박근혜가 이공계에 해박한 전문성 있는 발언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268686|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라고 말하거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2013203|센서 달린 신발을 인공지능의 사례로 혼동]]할 정도로 과학기술에 무지한 발언들을 보면 이공계로서 제대로 배운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후로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당한 대통령]]''' 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고야 말았다. *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박근혜]]는 51.6년 후에 반올림하면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선거 당일, 2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첫 번째는 강원도 [[원주시|원주]]에서 80대 노인이 투표 당일, 등재번호가 기재된 안내문을 두고 와 다시 집으로 가던 도중 기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두 번째로는 심장에 지병이 있던 70대 노인이 투표를 마치고 심장질환으로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 투표율 만년 꼴찌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던 [[인천광역시]]는 인천시청, 인천선관위,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의 노력으로 투표율 74%를 기록하여 꼴찌 탈출에 성공하였다. [[http://news1.kr/articles/941107|뉴스]]. * --이번에도 [[세븐 갤러리]]는 여지없이 털렸다.(...)-- 소재도 다양해서 선거, 투표율, 개표 등. * 선거가 박빙 양상을 보이면서 양 진영이 결집해 보수와 진보,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 간 대립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선거이기도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2010년대 모든 선거에서 보수정당은 2040 세대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해 오다가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었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 사이에 있던 중도보수층은 누굴 찍을까 고민한 묘한 선거이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보수 결집은 바라지만 [[박정희|독재자]] 딸이 당선되는 꼴은 못보겠다며 중립을 선언할 정도였다.[* [[친이]]계도 심정적으론 [[YS]]랑 큰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나, [[MB정부]] 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사건|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치보복 우려를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울며겨자먹기로 대선 무효 사단까지 벌어진 그 말 많고 탈 많던 [[국정원]]과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를 동원한 댓글부대까지 돌려가며 박근혜 후보를 밀어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박근혜 후보가 신승하면서 2012년 당시엔 범 보수진영의 크기가 범 진보진영보다 좀 더 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20대 총선|이후]][[19대 대선|의]] [[7대 지선|양]][[21대 총선|상]]을 보면 이것도 설레발이 되었다. * 선거 이후 --분을 못 삭힌-- 진보 지지층 일각에선, 공직선거법에 대해 전자개표를 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논란성 주장을 하기도 했다. 헌데 이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검표를 부실하게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검표 요구가 일었고, 진보진영 지지자들 사이에서 수개표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454010&thread=01r01|#]] 이와 더불어 백악관 홈페이지에 재검표 청원을 요구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http://www.fnnews.com/news/201301021246060843?t=y|#]] * 일부 진보층에선 선거 이후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시사in]]조차 이런 음모론은 황당할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405|#]] [[문재인]] 후보도 재개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부정적 의사를 표했다.[[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119020014|#]] 허나 이들은 한영수를 대표원고로 선거무효소송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전자개표기가 대선 당시 오류를 일으킨 사실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5464815|확인]]되었지만, 이들의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어 책에 대해 배포금지가처분 신청이 승인되고 명예훼손으로 기소된다. 개표조작설에 대해 이들이 취한 행동은 쉽게 말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취한 행동의 반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사실 이런 식의 투표 조작 논란은 어느 나라건 선거가 끝나면 선거에서 진 지지층들 사이에서 으레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물론 대부분은 음모론 수준에서 그치지만, 전부 다 음모론으로 보긴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찝찝한 점도 있다]]는게 웃픈 현실.] 다만 이들도 마냥 [[음모론]]자로만 몰리긴 억울했는지, 근거가 빈약한 개표조작설이나 전자개표위법설만을 이유로 선거 무효를 주장하진 않고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대선무효의 사유로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 탄핵]]으로 소의 이익이 없다며 [[각하(법률)|각하]](2013수18)되었다. 허나 이들은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이유로 무효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며 재심을 신청(2017재수88)했다고 한다. * [[파일:attachment/20121220000586_1.jpg]] [[Daum]]에서 당시 개표 막바지인 [[12월 20일]] [[새벽]]에 위와 같은 다른 결과('[[문재인]] 당선 확정')를 [[대문]]에 내보냈던 사건이 있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이 '확실'을 넘어 '확정'으로 접어든 새벽 2시 전후 시점에 벌어진 상황이라서 당시 다음에 접속한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황한 다음 측은 부랴부랴 대문을 교체했지만 어쨌든 사실상 미리 결과를 단정지어 놓은 것이 드러난 셈이라[* 다음 관계자들이 오후까지 투표율만 보고 문재인 당선이라는 확신에 차서 예정 시각에 맞춰 이런 결과가 나오도록 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아니냔 설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꼽힌다. 혹은 투표 결과에 [[멘붕]]한 관계자들이 벌인 일종의 [[정신승리]]라는 견해도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 가뜩이나 [[다음 아고라]] 등에서 보여지는 다음의 노골적인 편향성에 운영 주체들까지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 문재인은 이후 2017년에 다시 한 번 대선에 도전하였고,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이 받은 표의 비중은 18대 대선에서 받은 표수보다 적다. * [[네이버 지식iN|지식iN]] 에서 대선후보들이 직접 [[네티즌]]에게 질문을 하고 네티즌이 대선후보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naver_diary/150153353866|일기남녀 다이어리 블로그]]에서 확인 할 수 있다. *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같은 날 동시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와 함께 부재자신고를 한 유권자에 한해서만 투표가 가능했던 [[부재자 투표]]가 시행된 마지막 선거이다. 부재자 투표는 이듬해인 [[2013년]] 4월 24일에 치러진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그 다음해인 2014년에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최초.]부터 기존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여 확대 개편한 [[사전투표]]로 대체되었다. * [[청원군]]이 [[청주시]]와 통합하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다. * 1990년대에 와서 태어난 사람들이 처음으로 투표를 하였던 대통령 선거였다. 정확히는 1990년생, 1991년생, 1992년생, 1993년생이 여기에 해당된다. * 득표율에서는 꽤 큰 차이가 있지만, 각 후보들이 승리한 지역만 봤을 때에는 [[17대 대선|전 대선]]과 비교했을때 수도인 [[서울특별시]]를 제외하고는 모든 광역자치단체에서 민심이 변하지 않았다. 즉, [[이명박]]을 밀어줬던 지역은 전부 [[박근혜]]가 승리하고 [[정동영]]을 밀어줬던 지역은 전부 [[문재인]]이 승리했다. 서울은 전 대선에서 이명박을 밀어주다가 이 대선에서는 문재인을 밀어주었다.[* 참고로 이 선거는 [[연기군]]이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고 난 이후 첫 선거인데, 연기군은 17대 대선에서는 무소속 후보였던 [[이회창]]이 이겼으나 이회창은 보수 성향이었기 때문에 민심이 변하지 않은 것이나 다를것없다.] 사실 지역별 구도를 보면 17대 대선보다는 [[14대 대선]]과 유사했다. * 출구조사와 무려 3군데([[경기도]],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에서 1위가 뒤집힌 선거다. 출구조사에서는 3곳 모두 [[문재인]]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으나, 실제로는 3곳 모두 [[박근혜]] 후보가 이겼다. * 북한은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새누리당 측 후보의 당선을 간략하게 보도했으나, 박근혜 당선인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남조선]]에서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내외신들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19일 [[남조선]]에서 진행된 《대통령》선거에서 치렬한 접전끝에 《새누리당》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였다고 한다.(끝) * 후보의 성별을 보면 특이점이 있는데 여성 후보가 4명, 남성 후보가 3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대통령 후보로 더 많이 출마했다는 특이점과, 홀수 번호를 부여받은 대통령 후보는 모두 여성, 짝수 번호를 부여받은 대통령 후보는 모두 남성이라는 특이점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